서론: 보이지 않지만 영향력 있는 존재, 인체 속 곰팡이
사람의 몸속에는 약 1kg에 달하는 미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세균뿐 아니라 바이러스, 곰팡이, 고세균 등이 함께 공존하는 복잡한 생태계를 이루죠. 이를 인체 미생물군집(Microbiome) 이라 부르며, 최근 몇 년간 생명과학 연구의 핵심 주제가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곰팡이(Fungi) 는 전체 미생물 중 약 0.1~1% 정도로 적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면역 체계의 균형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2025년 현재, 구강, 장, 피부 등 인체 각 부위의 ‘마이코바이옴(Mycobiome, 곰팡이 군집)’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곰팡이가 단순한 기생자나 병원체를 넘어 면역 질환, 알레르기, 대사 질환 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인체 미생물군집과 곰팡이의 공생 관계
인체 내 곰팡이는 대부분 상재균(commensal fungi) 으로 존재하며, 특정 조건에서만 병원성을 띱니다.
대표적인 공생 곰팡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 Candida albicans: 장과 구강, 피부에서 흔히 발견되며 정상 면역 상태에서는 무해합니다.
- Malassezia spp.: 피지선이 많은 부위의 피부에 서식하며, 피부 장벽 유지에 관여합니다.
- Saccharomyces cerevisiae: 발효식품에 흔히 쓰이는 효모로, 장내 미생물 다양성 유지에 도움을 줍니다.
이들은 세균, 숙주세포와 상호작용하며 영양분 경쟁, 면역 반응 조절, 병원균 억제 등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즉, 곰팡이는 우리 몸속에서 ‘조용한 공존자’로 존재하지만, 그 균형이 깨질 경우 질병의 촉매로 변할 수 있습니다.
마이코바이옴의 불균형과 질환 발생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곰팡이 군집의 조성 변화—즉 마이코바이옴 불균형(dysbiosis)—은 다양한 면역 질환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 장내 곰팡이와 염증성 장질환(IBD)
- Candida tropicalis의 과증식이 장 점막 염증을 유발하며, 궤양성 대장염 환자에서 높은 비율로 검출됩니다.
- 곰팡이의 세포벽 성분인 β-글루칸은 장내 면역세포를 과도하게 자극해 염증 반응을 촉진합니다.
- 피부 질환과 곰팡이 균형
- Malassezia restricta의 비정상적 증식은 지루피부염, 아토피피부염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 한편, 정상 수준의 Malassezia는 피부의 산성 환경을 유지하며 병원성 세균의 침입을 억제합니다.
- 호흡기 알레르기와 곰팡이 포자
- 곰팡이 포자는 대기 중에 부유하며, 흡입 시 천식, 알레르기 비염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 특히 Aspergillus fumigatus는 기관지 내에서 알레르기성 염증 반응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으로 보고됩니다.
- 면역 저하와 기회감염
- 항암치료나 장기이식 환자처럼 면역이 약한 경우, Candida나 Aspergillus 감염이 전신성 패혈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이는 마이코바이옴의 평형이 면역 방어선 유지에 필수적임을 보여줍니다.
면역 체계와의 상호작용: 곰팡이의 ‘훈련된 면역’ 효과
인체 면역계는 곰팡이와의 반복적인 접촉을 통해 ‘훈련된 면역(Trained Immunity)’ 을 형성합니다.
이는 선천면역세포(대식세포, 수지상세포 등)가 곰팡이 성분을 기억하여 이후 감염 시 더 빠르게 반응하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Saccharomyces cerevisiae에서 유래한 β-글루칸은 선천면역계를 활성화시켜 감염 방어력을 높이는 동시에, 과도한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면역 조절 기능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곰팡이는 단순히 면역을 자극하는 존재가 아니라, 면역 균형을 정교하게 조율하는 생태적 동반자로 볼 수 있습니다.
마이코바이옴 연구의 최신 동향
2025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인체 마이코바이옴 연구가 폭발적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 메타게놈 시퀀싱 기술 덕분에 이전에는 검출이 어려웠던 희귀 곰팡이 종까지 분석 가능해졌습니다.
- 미국 NIH의 ‘Human Mycobiome Project’와 유럽의 ‘MycoSymbio Initiative’는 장, 피부, 폐의 마이코바이옴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질병과의 연관성을 규명하고 있습니다.
- 국내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여러 대학 연구팀이 한국인 피부 마이코바이옴 표준지도를 구축 중입니다.
이러한 연구들은 향후 맞춤형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 뿐 아니라, 항진균제 남용을 줄이는 개인별 치료 전략 수립에도 활용될 전망입니다.
미래 전망: 곰팡이를 이용한 미생물 치료의 가능성
현재 학계에서는 곰팡이를 단순히 억제 대상이 아닌 치료 도구로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Saccharomyces boulardii는 장내 균형을 회복시키는 ‘진균성 프로바이오틱스’로 상용화되어, 설사와 항생제 부작용을 줄이는 데 사용됩니다.
- 또한 특정 곰팡이의 대사산물은 장 점막 재생과 면역 조절을 돕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진균 기반 치료는 미생물 생태계의 균형 회복을 통한 질병 예방·치료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고 있습니다.
결론: 인체는 거대한 공생 생태계
인간의 몸은 단일 생명체가 아니라 수많은 미생물과 곰팡이가 얽힌 복합 생태계입니다.
곰팡이는 병원체이자 보호자이며, 면역 체계의 조화로운 작동을 이끄는 보이지 않는 설계자이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의학은 이 미시적 생명체들과의 공존 전략을 이해함으로써, 알레르기와 면역 질환 치료의 새로운 길을 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몸속의 곰팡이는 적이 아니라, 균형을 지키는 파트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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